*개인 기록이 주 목적인 글입니다. 주관적 감상평이므로 참고만 하시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2022년 11월 16일 수요일
<잡설>
부어오른 잇몸을 손으로 문지르는 감각을 아는가? 나는 이번 여행 내내 그 감각을 발바닥으로 느껴야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군대에서 행군을 돌았을 때도 이런 느낌까지는 받지 않았던 거 같은데 말이다. 여행 코스를 너무 힘들게 잡았기 때문이라기에는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인 둘째 날 아침부터 발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널널했던 첫째 날을 생각해 보면 일정 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뭐가 되었든 이때의 감각은 내게 매우 생소한 것이었고, 발바닥의 고통 말고도 왼쪽 오금과 허리에는 근육통이, 머리에는 두통까지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 대한 기억은 고통을 잊기 위해 던진 헛소리들과 행군 때처럼 부른 노래들로 가득했다.
그렇다고 이번 여행에서의 도보 길들이 내게 고통의 기억만을 남겨주지는 않았다. 친구와의 농담 따먹기도, 다음 목적지에 대한 기대감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거리의 모습을 보는 것이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내가 관전 포인트로 삼는 주요 볼거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교토의 거리에도 기억에 남는 재밌는 요소들이 많았다. 현대적인 건물임에도 이거는 일본이라서 있을 수 있는 건물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일본 가게들 사이에 한글로 적힌 간판들을 보거나 백종원 씨의 사진을 보게 되는 일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립입금지’ 표지판인데, 드나든다는 의미의 출입(出入)이 아니라 ‘설 립(立)’ 자를 쓰는 것을 보고 기어서 들어가면 문제없는 건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다.
사람들과 관련해서도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많다. 첫 번째로 기억나는 것은 16일 아침에 본 노란 모자를 쓴 초등학생 행렬이었다. 그 장면은 내게 꽤나 놀라운 것이었는데, 나는 일본 미디어 매체에서 유치원생들이 노란 모자를 쓰고 나오는 것을 보고서는 그게 해당 인물들이 유치원생임을 나타내기 위한 정형화된 상징 표현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날 본 아이들은 유치원생이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였기에 저 모자가 유치원생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 깨달음은 '만약 그렇다면 저 모자에는 문화적 관습이 아니라 기능적인 의도가 반영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 이어졌다. 내가 떠올린 것은 아이들이 차도에서 운전자들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함이라는 가설이었는데 그게 맞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
기요미즈데라에서 본 학생들의 교복도 내게는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다들 알다시피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여러 이미지들을 접하게 된다. 나는 그러다가 가끔 학생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사진들을 접하게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코스플레이어들의 복장이 너무 코스프레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를 못했었다. 일상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입는 옷에 가까운 우리나라의 교복과 달리 사진의 일본 교복들은 색이 너무 또렷했고 질감도 이상하게 빳빳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직접 일본에 가보니 그 의상들이 전혀 과장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다른 이야깃거리 없이 기억에 남는 분들도 있다. 난젠지 앞 블루보틀에서 자리가 빈다고 열심히 바디랭귀지로 신호를 보내오시던 한 일본 할머니, 난젠지에서 철학의 길로 향하던 중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도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한 꼬마 여자애, 후쿠오카 공항에서 빨간색 깔맞춤 패션으로 우리 앞을 지나가 내가 두통으로 혼미한 와중에 ‘아임 올 레드 라이크 아몰레드’ 같은 헛소리를 날리게 만든 모델 핏의 여성분도 있었고, 다자이후에서는 코스프레도 아니면서 슈퍼마리오처럼 빨간 긴 팔에 파란 멜빵바지를 입고 다녀 눈을 사로잡았던 분도 있었다.
그런 분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역시 지은원에서 뵀던 베트남인 부부다. 그분들은 우리가 지은원의 작은 연못 너머로 납골당 건물을 구경하고 있을 때 사진을 요청해오셨었다. 우리는 당연히 그게 두 분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인 줄 알고 흔쾌히 승낙했는데 갑자기 여성분께서 카메라를 잡으시더니 남성분께서 우리 둘을 이끌고 연못 앞에 서서 어깨동무를 하시더라. 여성분이 간단하게나마 영어가 되셨고, 그래서 우리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열심히 설명했음에도 괜찮다고 말씀하시며 사진을 찍고 떠나셨다. 그런 것을 보면 딱히 실수였던 것 같지도 않고 이유가 따로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는데, 일본 여행지에서 굳이 자국도 현지도 아닌 제3국의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일정>
7시 반 출발
센티도 브런치 카페
기요미즈데라(청수사)
스타벅스 니넨자카점
레이묘 신사 입구
야사카 신탑
텐슈 텐동
지은원
블루보틀커피 교토
난젠지
철학의 길
은각사
케이분샤 이치조지 점
라멘 토우히치
도지
<센티도Sentido>
-평점: 3/5
-핫 샌드위치를 파는 브런치 카페로 카라스마오이케역에 위치. 8시 오픈
-커피가 유명한 듯하며 같이 간 친구가 커피를 좋아해서 방문함. ANA 에어로빅 가공 기술로 로스팅된 커피라고
-핫 샌드위치 맛은 준수하며 브런치카페 다운 구성과 외견도 갖춤. 다만 “굳이 일본까지 와서?”라는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아침을 먹을 곳이 애매하고 커피를 좋아한다면 가볼 만은 하다고 생각
<기요미즈데라>
-평점: 4/5
-청수사라고도 부름. 일본 특유의 쨍한 주황색으로 칠해진 입구가 상당히 튀는 느낌이 있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입구만 넘어가면 웅장한 목조 건축물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광경이 굉장히 인상 깊음. 봄, 가을에 매우 좋을 거라고 생각된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면 청수사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의 구조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건물 자체보다 이 부분이 더 기억에 남는 듯
-아무래도 금각사, 은각사와 더불어 필수코스로 꼽히는 곳 중 하나이므로 사람이 아주 많다는 점에 주의할 것. 아침 코스로 계획하는 편을 추천
<스타벅스 니넨자카점>
-평점: 4/5
-카페보다는 관광지라는 느낌으로 한 번 가볼 만한 곳. 어차피 사람이 많아서 커피를 마시기는 힘들다
-꼭 가봐야 할 곳까지는 아니지만 2층짜리 목조 건물에 다다미가 깔려 좌식으로 앉을 수 있게 되어있는 인테리어가 교토라 볼 수 있을 만한 모습이라고 생각
<레이묘 신사 입구>
-평점: 생략
-신사까지 들어가지는 않았고 입구를 지나 오르막길 정도만 조금 올라가 봄
-엄청나지는 않은데 상가보다 살짝 고지대에 있어서 나넨자카의 상가를 내려다보면 일본식 기와 지붕들이 보인다. 그 사이에 야사카 신탑이 솟아있는 모습이 보여 사진을 찍고자 하는 목적으로 잠깐 들림
<야사카 신탑>
-평점: 4/5
-니넨자카 상가 사이에 있는 5층짜리 탑. 기요미즈데라에서 버스를 잡으러 대로까지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랜드마크스러운 건물이다. 기본적으로는 탑 하나만 덜렁 있을 뿐이라 신탑을 주 목적지로 노리고 찾아갈 만한 곳은 아니지만, 적당히 임팩트도 있으면서 경로 선택의 부담이 없어 추천
<텐슈 텐동>
-평점: 4/5
-꽤 맛있는 텐동 집. 튀김도 다양하게 나오면서 재료도 신선한 것 같고 맛에서도 특별히 흠잡을 데는 없다고 생각
-다만 꼭 이 집이어야 할 특색이 있다기보다 무난한 구성에 퀄리티로 승부한다는 느낌. 전형적이면서 맛있는 텐동을 먹고 싶다면 추천
-텐슈텐동이 있는 길에 기념품 가게들이 많으므로 위치상으로도 나쁘지 않을 듯
<지은원>
-평점: 5/5
-그저 지나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쓰게 돼 많이 놀랐던 곳. 정원인지 유료 입장하는 구역이 있지만 무료 구역만 돌아봐도 90프로는 즐길 수 있는 거 같음
-입구의 거대한 대문, 대문에서 이어지는 높은 계단, 본당 건물과 부속 건물, 연못 위로 넘어가는 다리와 그 너머 단풍 사이로 서 있는 납골당 등 볼거리가 상당히 많음
-특정 기간에는 야간 행사도 하는 것 같아 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라고 생각
<블루보틀커피 교토>
-평점: 3/5
-난젠지 가는 길에 있는 블루보틀 카페. 이미 유명한 장소인 듯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렸음. 다만 한국인한테만 유명한 곳이라는 느낌까지는 아님
-위에서도 말했지만, 커피 맛은 평가할 수 없음. 다만 교토스러운 목조 건물에 통유리로 뚫려있는 시원한 현대식 인테리어, 유리 너머 중간중간에 있는 정원의 조합이 매우 세련되었다고 생각함. 사진 찍기 좋을 듯
<난젠지>
-평점: 4/5
-넓은 정원과 거대한 목조 건물의 조화 너머로 다리 형태의 거대한 수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특징
-난젠지를 말할 때, 수로가 아무래도 교토의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요소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느낌이 있음. 하지만 정원과 목조 건축물이라는 조합도 조합 자체는 매우 흔한 구성이지만, 정원이 정원이라기보다는 공원에 가까운 형태이며, 목조 건물도 2층에 올라갈 수 있게 되어있어 나름의 특색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수로를 제외하고도 충분히 멋있는 곳이며 가볼 만한 곳
<철학의 길>
-평점: 2/5
-사실상 옆에 수로를 낀 기다란 산책로에 불과. 난젠지에서 은각사로 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지나치는 길. 굳이 찾아갈 곳은 아니지만 피해갈 곳도 아님
<은각사>
-평점: 5/5
-금각사처럼 교토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 절 건물 자체보다 선종 정원이 메인이며 그만큼 정원이 화려함
-선종 정원의 경우 그 특유의 형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모래를 이용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 솔직히 말하면 그 정교함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과연 옛날에도 이 정도의 연출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들기는 함
-모래 정원을 둘러싼 소나무와 연못의 배치도 매우 멋있었음
<케이분샤 이치조지 점>
-평점: 3/5
-목조 간판과 문틀, 벽돌로 이루어진 1층의 벽이 인상적인 서점
-멋은 있다고 생각하나 주요 관광지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기본적으로 서점이기 때문에 1층 외견이 사진 찍기 좋다는 것 이외의 메리트는 없어 보임. 우리는 라멘 토우히치를 먹으러 가는 김에 근처에 있어 방문함
<라멘 토우히치>
-평점: 3/5
-미슐랭에 실렸던 라멘 집. 맛은 괜찮은 편이고 4점도 줄 만하다고 생각하나 위치가 관광지로부터 동떨어져있는 편이라 아주 추천하지는 않음
-같이 간 친구의 경우 일반 라멘 메뉴를 먹었는데 오사카 라멘의 아주 정석적인 맛이라고 함. 맛과 퀄리티는 좋으나 이 가게만의 특별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내 경우에는 츠케멘을 시켜 먹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주 좋았음. 보통 다른 가게들의 츠케멘은 면이 건조한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면을 달걀흰자에 담아 촉촉함을 유지하는 데 성공함. 이 흰자가 소스와 만났을 때 면에 묻는 소스의 농도를 적절히 조절해주는 느낌을 받기까지도 받음. 하지만 비린 맛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흰자의 맛을 견디지 못할 수도 있으니 주의. 소스가 소스보다는 진한 수프에 가까워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던 점
-미슐랭에 실린 집이라고 해서 방심했었는데 대기하는 곳에 영어메뉴가 붙어는 있으나, 주문해야 하는 자판기는 일본어로만 적혀있다. 만약 이 음식점을 방문한다면 메뉴를 보고 이름의 주요한자 몇 개나 금액은 빠르게 머리에 넣고 들어갈 것
<도지>
-평점: 3/5
-탑처럼 매우 높게 쌓아올린 절. 야간에는 바깥에 조명을 비춰놓는다고 해서 굳이 입장까지는 하지 않고 외부에서 외관만을 구경했음
-주간과 야간에 유료 입장 범위가 달라진다고 알고 있기에 만약 내부를 구경하고 싶다면 당연히 주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 주간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은 모양. 다만 교토역 기준 남쪽에 위치하므로 다른 주요 관광지의 경로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은 알아둘 것
-구글맵을 치고 갈 경우에 골목길 깊숙이 있는 출입구로 안내한다. 복잡한데다 낮에는 몰라도 밤에는 잠겨있어 멀리 돌아가야만 했었음. 도지를 방문하고자 한다면 근처에 도착한 후부터는 구글맵을 보지 말고 그냥 블록 외곽의 차도를 따라 걸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