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21일(월)

 

 

<잡설>

감았던 눈을 떴다. 들려오는 안내 방송에 고개를 돌리자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먼지인지 안개인지 모를 희뿌연 무언가에 휩싸여있는 도시. 비행기 날개 끝이 그 입자층을 가르고 기체가 무겁게 활주로 위에 내려앉을 때, 내 시선은 저절로 하늘을 향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예전 산업혁명 시기 런던에 붙었던 안개의 도시라는 별명은 이제 이 도시의 몫이라고, 비행기를 스치는 바람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내가 이번 여행을 계획한 것은 굳이 얘기하자면 의욕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올해 노력했던 것들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어도 결과로 나타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고, 그로 인해 한동안 탈력감을 떨쳐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단순히 방에서 쉬는 것으로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아예 타국에 몸을 내던져보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충동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친구가 한 번 여행할 때 뽕을 뽑아야 한다는 듯 이런저런 여행지들을 후보지에 구겨넣을 때도 나는 별다른 반대 없이 모든 제안을 수락했다. 일정의 현실성 따위에 토론하기보다 스스로 찝찝할 정도로 프리라이더가 되기를 택했다. 그 결과 이번 여행의 일정은 꽤 빽빽해졌고, 한 번 욱신거리기 시작한 몸은 마지막날까지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후회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그 빡빡한 일정 덕에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고, 그럼에도 보지 못하고 지나쳐야 했던 것들 역시 많으니까. 그럼 이번 여행 덕에 의욕을 되찾았는가? 글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그렇다고 대답할 차례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짐을 풀고 며칠간은 몸이 아프니 오히려 더욱 게으름 속에 잠기게 된 느낌마저 들었으므로. 원래 세상은 그리 극적이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에 실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인생은 항상 그래왔다. 어떤 명확한 계기도, 엄청난 우여곡절도 없었지만, 내 입맛도, 시선도 평생에 걸쳐 자연스럽게 달라져 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다시 맞게 될, 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 속에서, 나는 내가 다시 발을 내디딜 힘을 되찾게 될 것을 믿는다.

 

 

<일정>

공항

그리고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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